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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의정 사태와 임상 현장의 서사
2024년 의정 사태는 의학교육의 운영과 함께 교육자와 의사의 책임, 권한, 신뢰를 묻는 문제가 되었다. 의료위기를 다룬 논평과 학술지 개편 구상은 전문가의 의견과 현장의 경험을 공적으로 논의할 조건을 제시한다. 부검 요청과 심박동기 시술에 관한 두 서사는 환자와 가족의 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의사의 판단과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준다. 이를 HRD와 의학교육의 관점에서 연결하면, 전문성 개발에는 임상 경험을 성찰하는 학습과 그 판단을 지지하는 조직적 조건이 함께 포함된다.
의료위기 속에서 전문적 판단과 돌봄을 지속하는 조건
도덕적 손상은 의료인이 옳다고 여기는 돌봄을 제도와 조직의 제약 때문에 수행하기 어려울 때 겪는 고통을 가리킨다. 2024년 의정 사태에서는 환자 진료와 학생·전공의 교육을 맡은 의과대학 교수의 책임과 이를 수행할 권한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전문성 개발을 이해하려면 의료인이 무엇을 아는지, 어떤 관계와 제도 속에서 그 지식을 사용하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의학교육의 책임과 권한에서 발생한 도덕적 손상
2024년 의료위기에 관한 논평은 의과대학 교수의 좌절을 도덕적 손상으로 이해하며, 교육과 진료를 지속할 기반을 묻는다. 논의의 기준 시점은 2024년 6월 12일이다. 2월 6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2월 19일부터 시작된 전공의 사직과 학생들의 휴학원 제출, 6월 4일 정부의 전공의 사직서 수리 허용과 복귀자 행정처분 중단을 차례로 짚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정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4,567명으로, 기존보다 1,509명 늘어난 규모였다.
논평은 정부가 의사들을 개혁의 협력자보다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대상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정책 언어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에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의대 정원 확대를 실행할 당사자가 교육 여건과 실행 가능성 논의에서 배제되었다고 지적하며, 교육 책임과 의사결정 권한을 함께 다룬다.
수련기준 변경 논의에서 이 문제가 드러난다. 원문에 따르면 수련기간이 1년인 인턴의 96.7%가 당시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이 다음 해 전공의 과정에 지원하도록 인턴 수련기간 기준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문의 수련에서도 시험을 먼저 치르고 부족한 수련은 나중에 채우는 방안을 언급한다. 논평은 이를 교육의 질을 유지할 책임과 정책 대응 사이에서 교수가 겪는 갈등으로 해석한다.
전문가와 학생의 경험을 공유하는 학술지 개편
학술지 개편을 알리는 논평은 2024년 의정 사태와 지식·정보의 증가를 배경으로 의학교육 현안을 논의할 통로를 넓히자고 제안한다. 기존의 Special Issue를 Special Section으로 바꾸고, 초청 원고 유형인 Scholarly Perspectives를 도입한다. 종설과 원저처럼 학문적 평가를 받으면서 전문가의 견해와 분석을 유연한 형식으로 담는다. 새로 도입하는 Commentaries는 Editorial Comment와 Expert Opinions로 구성되며, 동료 평가를 거쳐 주요 현안을 적시에 논의하도록 설계된다.
Healing Narratives에서는 환자 이야기, 교육자의 고민, 임상 경험 성찰을 담아 서사 지식을 공유한다. Students’ Voice에서는 학생들이 의견, 에세이, 편지로 학습 경험과 제안을 공유한다. 2024년에 시작한 ‘의학교육논단 학생연구자상’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영상 기반 학술 자료에는 특집 초청 저자 대담, 연구자의 논문 소개, 교육 혁신 사례, 학생 참여 콘텐츠를 담는다. 이 개편은 의학교육논단 27권 2호부터 적용한다.
부검 요청에 담긴 상실과 의사됨의 배움
부검을 요청한 유가족과 만난 경험을 다룬 치유서사(Healing Narrative)에는 내과 전공의 1년 차 때의 진료 경험과 4년 차 때의 재회가 담겨 있다. 환자는 급성 대동맥판 역류로 인한 심부전으로 입원했다. 이후 베체트병 때문에 대동맥 근위부에 심한 염증과 판막 주위 농양이 생겼음을 확인했다. 당시 captopril titration protocol은 6.25 mg으로 시작해 6시간마다 증량하는 방식이었다. 투약 전과 직후, 5분 후, 1시간 후에 혈압을 측정하고, 상태가 괜찮으면 다시 5시간 뒤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서사는 ‘혈압=심박출량×혈관저항’이라는 도식을 환자의 반응과 연결해 배우던 과정과 치료의 의미를 환자와 부인에게 설명하던 경험을 담는다.
환자는 심장판막수술을 받았으나 염증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등 치료 과정의 문제로 사망했다. 저자가 전공의 4년차일 때 찾아온 환자의 부인은 남편의 심장과 폐를 살펴 같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그리고 그 부검하는 자리에 선생님이 꼭 함께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저자는 처음에는 부인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떠올려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말에 담긴 사망 소식과 상실의 슬픔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성찰한다. 지도교수와 심장병리 전공 교수, 심장혈관외과 과장이 협력하여 부검했고, 요청받은 전공의도 함께했다.
부검 요청에는 사망 원인 확인과 함께 남편의 죽음에서 배운 것이 다른 환자를 살리는 데 쓰이기를 바라는 가족의 뜻이 담겨 있었다. 서사에서 attentive listening은 환자의 말뿐 아니라 표현 방식, 침묵, 신체 상태까지 받아들이는 태도다. 3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경험을 다시 이야기하는 행위는 representation이 된다. 가족의 당부가 의사로 살아가는 내내 이어지는 경험이 affiliation이다.
심박동기 시술의 의미를 가족관계에서 이해한 프로네시스
심박동기 시술을 거절한 환자를 다룬 치유서사(Healing Narrative)에서 환자는 완전방실차단으로 입원한 84세 여성이었다. 맥박은 1분에 30번 정도였다. 심장내과 수석 전공의가 1시간 넘게 설명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하자 저자도 설명에 나섰다. 당시 저자는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2년간 심장내과 전임의 수련을 거쳐 부정맥 분야를 수련하던 중이었다. 국소 마취와 기기의 크기를 쉬운 말과 그림으로 설명했으나, 환자는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됐다”며 거절했다.
다음 날 지도교수는 환자를 만나 “할머니, 치료받지 않으시면 자식들이 고생합니다”라고 말했고, 환자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이후 환자는 정정하게 몇 해를 더 살았다. 서사는 이 변화를 지위에 따른 영향력보다 환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관계를 이해한 판단의 결과로 해석한다. 저자에게는 완전방실차단이 치료의 이유였다면, 환자에게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일이 치료를 선택할 이유가 되었다.
이 사례에서 프로네시스는 심전도 해석과 시술 역량을 환자가 살아갈 이유, 가족을 돌보려는 뜻과 연결하는 판단으로 나타난다. 서사는 practical wisdom을 구체적인 상황에 참여하고 그 경험을 성찰하면서 형성되는 지혜로 설명한다. 임종이나 의료사고 이후처럼 이해관계와 도덕적 판단이 함께 작용하는 경험도 이러한 학습의 예다.
논의
HRD와 의학교육을 함께 연구하는 관점에서는 경험을 성찰할 기회와 이를 동료·학생과 공유할 통로를 전문성 개발의 조직적 조건으로 살펴볼 수 있다. 두 서사를 교육자료로 활용할 때에는 부검 요청에 응답하는 방식과 치료 동의에 이르는 대화가 검토 대상이 된다. 다른 환자에게도 가족관계가 같은 의미인지는 당사자의 말을 듣고 확인할 문제다.
참고문헌
안신기. (2024). 아픔에도 일어서야 하는 심연: 2024년 의료위기와 의과대학 교수의 도덕적 손상. 의학교육논단, 26(2), 125–132. https://doi.org/10.17496/kmer.24.023
안신기. (2025).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의학교육논단. 의학교육논단, 27(1), 1–2. https://doi.org/10.17496/kmer.25.003
안신기. (2025). 그날, 부검을 요청받았다. 의학교육논단, 27(2), 181–183. https://doi.org/10.17496/kmer.25.017
안신기. (2025). 자식들이 고생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만난 프로네시스. 의학교육논단, 27(3), 227–229. https://doi.org/10.17496/kmer.25.036